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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만 끝내자'
눈물을 흘리며 아스카는 말했다.
그가 그 순간 붙잡아 주길 바랬다. 그러길 바랬다. 그건 꿈이었다.
현실은 잔혹하게도 그러질 않았다.

'그래.. 잘 지내라'
그는 한마디에 떠나버렸다.

유우키 쥬다이, 그는 그날 그렇게 흩날리는 낙엽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까.


듀얼 아카데미아의 동창회가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아스카는 덜컹 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내 여행을 떠난 쥬다이가 오겠느냐는 생각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껏 단장을 하고 오랜만의 듀얼 아카데미아로 떠났다.
오랜만에 만죠메와 쇼도 만났고, 여러 동기 들도 만났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 녀석'... 유우키 쥬다이도 보였다.

너무나도 괜찮은 표정으로 쥬다이는 위스키 잔을 들며 동기들을 만나고 있었다.

아스카는 온몸이 굳었다. 다 잊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좋을까. 이대로 모른 척 가서 인사라도 해야 할까. 안녕 쥬다이. 오랜만이네. 여행 간 줄 알았는데.
이런 어색한 인사치레라도 건네야 하나.

옆에서 쇼와 만죠메가 눈치채고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지만 그거야 이미 때는 늦었고.....

아아-전 남자 친구를 동창회에서 만난다는 건 이리도 최악이구나.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꿈은 이리도 허무했구나- 현실은 이리도 잔혹했구나-


그 순간, 눈이 마주쳐 버렸다.


더 당황스러웠다. 이럴 땐 피해야 하나.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다.

"만죠메, 쇼.. 미안.. 잠시..!"

어어...?! 하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아스카는 학교 밖으로 나와버렸다.

잠시 한숨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 아스카의 어깨를 톡톡, 하고 건드렸다.

"누구.... 쥬다이..!"
"관계도 정리된 마당에, 굳이 피할 이유가 있나?"
오지 말길 바랬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다.

"왜 왔어."
"오랜만에 얼굴 좀 볼까 하고. 여전하네"
"칭찬이지? 너도 여전하네"

제발 가주길 바랬다. 아스카는 이 곳을 당장이고 떠나고 싶었으니까.

"잘 지냈냐?"
쥬다이가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너는?"
"내가 먼저 물었는데?"
"....... 난...."

잘 못 지냈어.라고 대답한다면 그저 웃길까.
근데 정말 그랬다. 아직도 이상하리만큼 미련이란 것은 남아있었고, 여전히 좋아하는 감정 또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찬 건 아스카 본인이지만.

"그럭저럭이야."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어물쩡 대답한다. 쥬다이는 한번 씩- 웃더니 "그래? 나도 그럼 그럭저럭이라 대답해주지."라며 능글맞게 웃었다.

뭘까. 우린 이미 끝난 사이인데.


바람이 스산하게 곁을 맴돈다. 전과 같은 연인관계였으면 춥지 않으냐 걱정해줬을 텐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줄까. 아스카는 그렇게 해주길 내심 빌었다.


"아, 좀 쌀쌀하네."
"그, 그렇네.."
"나 먼저 들어간다."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기까진 얼마 걸리진 않았다. 이미 쥬다이는 다시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내심 걱정을 바랐던 자기 자신이 멍청했음을 깨닫고 눈물을 쏟아냈다. 우린 끝난 사이었지. 아아, 현실이 이토록 잔혹하구나. 우린 정말 끝났구나.


아스카는 결국 소리 내어 울었다.